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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정서3편: 아이는 공감하고 위로해주려고 애쓴다

by 견지맘 2023. 9. 18.



견지맘
@Sarah_Kim73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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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견지맘입니다. <정서2편: 아이는 관찰한다>에 이어서 <정서3편: 아이는 공감하고 위로해주려고 애쓴다> 들어가보겠습니다.

정서2편에서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린적이 있었습니다.

“ 마음의 한도가 바닥나가전까지는 아이들이 부모를 가까이 하려고 노력합니다. ”

그 가까이 하려고 하는 노력이 부모말을 잘 듣고 부모가 힘들때면 어떻게라도 부모를 공감해주고 위로해보려고 애쓰는것입니다. 자기자신한테 무리한것이라도요.

저의 기억에 제가 우울증을 느꼈던 초반에 우울증으로 인한 안좋은 상황을 개선해보려고 “애도”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안좋은 정서를 조절하는 방법중 하나인데요. 여기에 관해서는 <스트레스해소법2편: 애도>에서 공유해드릴 예정입니다.

애도는 사실 누구에 대해서 스트레스가 극도에 도달했을때 머리속으로 그 스트레스를 준 상대방의 장례식을 치러서 머리속 내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로 보내버리는 방법입니다. 즉 머리속에서 감정적으로 그 사람을 지워버리는데 가깝죠. 정말로 극단이 아니고서는 할 필요가 없는 대책입니다. 그 애도를 할때까지도 저는 망설였습니다. 엄마를 한번 더 껴안아주고싶었습니다.

그래서 저자신이 벼랑끝에 서서 떨어질가봐 두려워서 못견딜거 같은 컨디션이면서도 엄마한테 이런 문자를  보냈습니다.

“엄마 혹시 기분 안좋은거 있으면 나랑 얘기해봐. ”

그게 제가 마지막으로 엄마한테
따뜻한 말을 건넸던 순간이었던것 같습니다.

그랬더니 엄마한테서 길다란 문자가 왓습니다. 대체적으로 힘든일이 이렇게이렇게 많다는 내용이였습니다. 마치 쓰레기통에 쓰레기버리듯이 자신의 안좋은 컨디션을 저에게 던져줍니다. 항상 그랬습니다. 제가 따뜻한 말 해줄때나 힘들어서 껴안아주기를 바라면서 마음속얘기 할때나 엄마는 저하고 마주하면 자기자신만 보입니다. 딸인 저의 컨디션은 아예 생각할 필요가 없는 일인것 같습니다. 엄마한테는 제가 마치 쓰레기통 같은 느낌이 납니다. 화나면 스스럼없이 저한테 화내고 하소연하고 싶으면 스스럼없이 저에게 길다랗게 늘어놓고 제가 뭐 좀 말하고싶다 그러면 넌 왜 나를 그렇게도 이해못하니 그러면서 더 많은 쓰레기를 저라는 쓰레기통에 버립니다. 맞잖아요. 쓰레기통은 쓰레기를 받을수 밖에 없습니다. 쓰레기통이 쓰레기를 받는건 당연한 일이기에 불만이 있으면 안되죠.

길다란 엄마의 문자를 보면서 저는 제가 아주 급속히 절망의 도가니속에 빨려들어가는것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에 울음이 터져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날밤에 더이상 망설임이 없이 엄마에 대한 애도를 했습니다.

애도가 끝나고 며칠의 조절을 거쳐서 컨디션을 회복하고나서 저는 미묘한 변화를 느꼈습니다. 더이상 엄마한테 따뜻한 말을 해주고싶은 충동이 안생기는겁니다. 아마 그때 엄마에게로 향한 마음의 문이 닫혀버린거 같습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흔히 아이가 말을 잘듣고 부모를 편하게 해주려고 애쓰니까 자신의 틀린 방법이 먹힌거라고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결과는 어떻게 될가요 ? 다음에 또 유사한 문제가 발생하면 부모는 전에 “먹혔던 방법” 을 또 사용하게 됩니다. 그러면 아이는 아직 마음의 한도가 바닥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는 똑같이 부모말을 듣고 공감해주려고 위로해주려고 애씁니다.  이렇게 순환은 계속됩니다. 아이의 마음속 한도가 전부 고갈될때까지요.

이건 훈육일가요 ? 아니면 지배일가요 ?

이렇게 키워낸 아이는 사람일가요 ? 아니면 도구일가요 ?

사람은 독립적으로 그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고 꿋꿋이 살아갈수 있습니다. 도구는 다른 사람의 지배를 받지 않으면 의미를 잃습니다.

그렇다면 왜서 어떤 사람은 도구로 전락되는 운명을 피할수 없을가요 ?

정서2편에서 제가 말씀드렸다싶이 아이들은 부모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또 부모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때문에 아이가 부모한테 가까이 가야 하는 수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가 아이에게 필요한 사랑을 안주거나 줄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아이들이 크면서 마음의 한도가 바닥났을때 이들은 어떻게 할가요 ? 보통은 두가지 아주 극단의 모습을 보입니다. 극단적으로 쉽게 화를 내거나 극단적으로 복종하거나.

그럼 먼저 극단적으로 쉽게 화를 내는 사람들을 보겠습니다. 왜서 부모의 사랑을 못받으면 극단적으로 쉽게 화를 내게 될가요 ?

간단합니다. 원하는게 이루어지지 않으니까요. 또 달리 해결할 방법도 없고 또 해결할 능력도 없습니다. 사람이 모든게 꽉 막힌 외골목에 놓이면 당연 화가 납니다. 또 혹시 부모님이 원하는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화부터 내는 모습을 오랜시간동안 보아오면서 저도모르게 이런 모습이 뼈속 깊이 각인이 된건 아닌지 추측해봅니다. 혹시 쉽게 화를 내는 아이를 둔 부모님들은 아니라고 부인하고싶으실가요 ? 저는 쉽게 화를 내는 아이들이 부모님의 화내는 모습을 많이 보았을거라고 믿습니다. 가정이 아이의 맨 처음 교육장소이니까요. 또 아이들은 집에서 배운대로 밖에 나가서 행동합니다.

겉모습만 보면 화를 내는게 마치 아이의 반항처럼 보이지만 사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어쩌면 부모에 대한 극단의 철저한 복종이 아닐가요 ? 부모를 아주 뼈속까지 그대로 카피해서 부모님과 똑같은 사람이 된겁니다. 그럼 이렇게 자라난 아이들이 아이가 있으면 어떻게 될가요 ? 또 자신하고 똑같은 모습의 아이를 만들어냅니다. 순환은 이렇게 계속됩니다. 그 어떠한 공포영화도 이보다는 무섭지 않을겁니다.

제가 어릴적 할머니댁에서 살때의 행복한 기억을 찾기전에는 저의 엄마랑 점점 닮아가는걸 아주 선명하게 느꼈습니다.

저의 외할머니가 바로 매사에 툭하면 화내는 분입니다. 저의 엄마는 열세살에 엄마가 세상뜨고 큰오빠와 형부집에서 가정일을 도와주고 아이키우는것도 도와주고 하면서 자랐습니다. 부모사랑받을 시간이 많지 않았죠. 엄마는 저랑 대화라때 화없이는 안되는것 같아보였습니다. 저도 한동안은 극단적으로 화가 많은 시절이 있었습니다. 조절을 아주 오랜 시간을 해서야 겨우 평온한 상태를 찾았습니다. 화가 날때 제가 자신을 조절했던 방법은 정서5편에서 공유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되돌려서 극단적으로 복종하는 사람들을 보겠습니다. 왜서 부모의 사랑을 못받으면 극단으로 복종하게 될가요 ?

쉽게 화를 내는 사람들과 이유는 똑같습니다. 원하는게 이루어지지 않으니까요. 다만 복종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부모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방식으로 부모의 사랑을 받아보려고 노력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자신의 모든것, 인격마저도 부모한테 바쳐가면서요. 그들이 아직 노력하고 있다는건 그들이 부모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기대가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슬프디 슬픈 진실은 많은 경우에 이들이 부모에 대한 이런 기대가 부모님이 그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복종하게 하는 도구로 쓰인다는것입다.

전 아직도 기억나는 일이 있습니다.

아빠가 하던말.

“니가 나한테 쥐꼬리만큼한 돈을 부쳐보내면 뭐하냐. 다른집애는 대학안나와도 돈 너보다 더 많이 번다드라. 대학 나와도 다 소용없다.”

뜻이 아주 명백합니다. 부쳐보낸 돈이 눈에 안찬다는거죠. 부쳐보내기가 힘든 상황이였지만 더 많은 액수로 부쳐보냈습니다. 단지 아빠의 그 영혼도 없이 던져주는 한마디 “고맙다.” 가 듣고싶어서요. 저는 아빠가 제가 기대하고 있는걸 알기에 그렇게 움직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부정하면 제가 그게 아니라는걸 증명하기 위해서 움직일걸 알기때문에.

이와 선명하게 대비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어릴적 할머니댁에서 자랄때의 좋았던 기억을 되찾은 그 해 저의 큰아버지의 생신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저의 선물을 보고 큰아버지는 너무 기뻐하시는겁니다. 제가 준비한것은 제가 어릴적에 큰아버지가 늘 사용하시던 스타일의 수저+밥그릇세트였습니다. 큰아버지가 그러셨어요.

“이야~, 여기 밥담아먹으면 정말 맛있겠다. 너무 고맙구나.”

얘기하시는 내내 싱글벙글 웃으시는 큰아버지, 큰아버지가 하시는 그 말, 그 웃음, 여직껏 살아오면서 저의 집에서는 긍정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없는 저에게는 마치 말라서 갈라터져버린 땅에 조용히 내려주는 봄비같았습니다. 너무 편하고 그 순간에 갑자기 텅 비여있던 저의 마음속을 채워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가 어릴때도 큰아버지는 늘 저에게 웃는 모습이셨습니다. 어디서도 찾을수 없는 그런 따뜻함이 느껴졌습니다…

이제 앞에서 제기했던 물음을 다시 보겠습니다. 왜서 어떤 사람들은 도구로 전락되는 운명을 피할수 없을가요 ?

부모한테서 적합한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항상 마음속이 비어있습니다. 워낙에는 사랑으로 가득차야 할곳이 비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이 비어있는 공간을 채워야 하는 수요가 생깁니다. 헌데 가정에서는 그런 적합한 충전재를 찾기가 너무 힘듭니다. 그러면 자연히 외부에서 찾게 됩니다.

외부에는 어떤 가능성이 있을가요 ? 누구랑 연애해서 결혼을 통해서 빈 마음속을 채워주거나 아니면 직장에서 일잘해서 직장상사한테 충분히 긍정을 받거나 또 아니면 친구한테 너 진짜 괜찮은놈이다 인정받거나. 그러면 자연히 부모사랑이 없이 자란 아이들은 이 몇가지에 집착을 하게 됩니다.

남자친구가 그냥 싸구려리본 하나밖에 챙겨준게 없어도 그 리본이 너무나 감동스럽습니다. 집에서는 싸구려리본 하나도 받아본적이 없기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리본 하나에 목숨걸고 남자친구한테 모든걸 다 털어줍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이성을 잃고 범죄도 마다하지 않을수 있습니다.

직장상사가 아무리 무리한 요구를 하더라도 거절할 힘이 없습니다. 거절하는법을 배운적도 배울 기회도 없었으니까요. 오히려 직장상사의 무리한 요구가 집에서의 무리한 요구보다 더 편합니다. 집에서는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에 돌아오는건 다음번의 무리한 요구입니다. 하지만 직장상사의 무리한 요구는 들어주면 달마다 월급이 나옵니다. 잘되면 승진도 가능하지 않을가 꿈도 꿔볼수 있습니다. 하여 월급이 아쉬워서, 승진기회가 아쉬워서 직장상사를 위해 뭐든지 합니다.

친구가 돈 좀 빌려라 하면 사채를 내서라도 빌려줍니다. 친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친구가 등돌리는 모습이 두려워서요. 그뜩이나 외로운데 친구가 가버리면 더 외로워질가봐 두려워서요.

게다가 화를 많이 내는 사람은 사회관계도 그닥 좋지 않습니다. 툭하면 화를 내기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할 사람이 얼마나 될가요 ? 하여 이들은 외로움을 쉽게 느낍니다. 외로움을 느낄때 누군가가 와서 손저으면 바로 따라가게 되고 그 사람에게 목숨을 겁니다.

이들은 모두 똑같은 특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성적인 사고를 하기 너무 힘들어합니다. 제가 정서1편에서 설명드렷다싶이 장기적으로 부모의 무리한 요구때문에 스트레스호르몬지수가 높은 수위에 있는 상황에서 이성적인 사고를 할수가 없는것입니다. 그러면 자연히 긍정과 이용을 구분못하게 됩니다. 이용을 긍정으로 잘못알고 있으면 당연히 도구로 전락될수 밖에 없습니다…

부모님들께 묻고싶습니다.

아이를 사람으로 키우실건가요 ? 아니면 도구로 키우실건가요 ?
사람으로 키우실려면 훈육을 하시고 지배하려고 하지마세요. 아이들 마음속 한도 진짜 많지 않습니다.

이상 <정서3편: 아이는 공감하고 위로해주려고 애쓴다>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문장으로 <정서4편: 누가 아이고 누가 부모일가 ? > 올릴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

혹시 다른 내용이 필요하신 부분이 있으시면 제가 문장시작에 남겨놓은 저의 트위터에 메세지를 남기거나 티스토리블로그에 댓글을 남겨주시면 저의 능력이 닿는데까지 최선을 다해서 문장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힘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