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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소감

정도이상의 절약과 그 대가

by 견지맘 2024. 4. 24.

견지맘  
@Sarah_Kim73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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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견지맘입니다.

예전에 제가 어릴때에 한동안 큰아버지댁에서 지내다가 다섯살이 되어서야 아빠엄마랑 함께 지내기 시작했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는것이 있는데요. 제가 큰아버지댁에서 지낼때 할머니가 지어주셨던 옷 한벌이 있었습니다. 남색밑바탕에 핑크색꽃무늬가 있는 면재질의 원단으로 지은 옷이었습니다.

제가 아빠엄마집에 돌아와서도 한동안은 그 옷을 입었습니다. 나중에는 옷이 하도 너무 작아서 못입게 되어서 어쩔수 없이 버렸습니다. 그 옷을 입을때는 느낌이 아주 포근하고 따뜻했습니다.

이와 대비되게 다른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나서 모든 옷이 너무 낡고 볼품없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이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습니다. 아빠랑 엄마는 이미 이혼했고 아빠는 새로운 가정이 있었고 엄마는 혼자이긴 했지만 집에 거의 돌아오지 않아서 얼굴도 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빠한테 찾아가서 옷을 사야 된다고 말했더니 아빠는 엄마를 찾아가라고 저를 밀어냈습니다. 그래서 엄마를 찾아가자 엄마는 이튿날에 옷 한꾸러미를 가져왔습니다. 친척가운데 저하고 비슷한 나이또래 아이가 입다가 싫어서 버리겠다는 옷을 가져온겁니다. 거기서 맞는걸 골라서 입으래요.

새 옷 사고 싶다는 말이 굴뚝같이 하고 싶었지만 억지로 삼켜버렸습니다. 예전에도 유사한 요청을 했지만 돌아온건 제가 엄마가 힘든것도 못알아본다는 꾸지람밖에 없었기때문입니다.

할수없이 옷꾸러미속에서 몇견지를 골라서 한해동안 입었습니다.

학급에서 다른 아이들이 매번 유행이 바뀌면서 새로운 패션으로 옷을 바꿔 갈때면 저는 너무 부러웠습니다. 묵묵히 다른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또다시 말없이 공부하곤 했습니다.

하… 갑자기 한숨이 나오네요. 눈물이 납니다. 그 시절, 너무 힘들었습니다. 가끔은 그 낡은 옷 몇견지를 받았다는 이유로 친척들한테 비웃음도 당하곤 했습니다. 더 웃기는건 아빠엄마가 저에게 낡은옷 주는 친척들에게 고마워해라는것입니다. 그걸 못하겠다 그러면 아빠엄마한테서 니가 양심이 없다고 또 욕먹곤 했습니다.

이미 낡은 옷가지들을 가져오는 대가로 모욕을 당했는데 그 이상 또 다른 대가를 더 치러야 하나요 ?

고마워 해야 한다면 어떤 이유때문에 고마워해야 할가요 ? 친척들이 낡은 옷을 준 덕분에 아빠엄마가 저에게 써야 될 돈을 절약하게 해줘서 너무 고맙다고 해야 할가요 ?

솔직히 일반적인 옷은 몇푼 안합니다. 아빠엄마가 저에게 돈쓰는 일이 얼마나 싫었으면 그 몇푼 절약한 일이 그렇게 고마울가요 ?

어떤 분들은 기증한 옷가지를 연상하실수도 있습니다. 기증받은 옷가지랑 친척들한테서 비웃음당하면서 넘겨받은 낡은 옷가지를 비교한다면 그게 과연 대등한것일가요 ?

사실 그 시절 저는 다른 사람이 버린 옷을 몸에 입으면 항상 아빠엄마가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친척들의 비웃음이 각인되었습니다. 또 그런 각인때문에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이런 아픈 느낌을 조금이라도 보이면 또 아빠엄마에게서 욕을 먹었습니다. 은혜를 모르는 매정한 사람이라고.

한동안은 아빠엄마가 진짜로 너무 미웠습니다. 상처가 너무 컸기때문입니다.

물론 어떤분들은 그러시겠죠 ? 부모가 왜 그렇게 생각하겠냐, 그런거 아니다. 사실, 부모가 어떻게 생각하든지에 관계없이 이런 일을 당하는 저의 입장에서는 마음이 아플수밖에 없습니다. 아빠엄마가 저에게 아무리 니가 미워서 그런거 아니다 해도 저에겐 한낱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우울증치료를 하면서 명상을 통해서 큰아버지댁에서 살던 기억을 되찾고나서 기억을 재구성하고 저의 마음속에서 가족을 다시 정의했습니다. 제가 큰아버지 일가와 많은 부분이 아주 닮았고 큰아버지도 저를 딸로 아끼고 사랑해주셨기때문에 저의 마음속에서 저의 진정한 가족은 큰아버지 일가였습니다. 저의 아빠, 엄마, 언니는 그냥 “가족”이라는 딱지를 자기 스스로 머리에 붙이고 그 딱지를 이유로 이러저런것들을 강요하고 멋대로 행패부리는 사람들에 불과했습니다.

가족에 대한 정의가 바뀌자 아빠, 엄마, 언니에 대한 미움도 차차 정리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마음이 아픈 이유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있고 바램이 있었기때문입니다. 가족을 다시 정의한 후에는 그들에게 향해서는 마음이 거의 닫겨 있는 상태였습니다. 마음이 닫기면 더이상 믿음도 아픔도 바램도 생기지 않습니다.

어떤분들은 그러시겠죠 ? 부모가 부유한 생활을 제공해주지 못하는걸 탓하는 니가 잘못된거라고. 부모가 가난하고싶어서 가난했냐고.

가난한것이 문제였을가요 ?

제가 아주 어릴적에 세상에 대한 인식이 너무 부족했던 시절에는 진짜로 가난한것이 문제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일하기 시작하고 견식이 점점 더 풍부해지면서 예전에 갖고 있던 많은 마인드에 대해서 다시 사고하게 되면서 많은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명상을 통해서 기억을 찾고나서 다시 생각할때는 많은것이 더욱 선명하게 안겨왔습니다.

사실 제가 어릴적에 큰아버지댁에서 살았을적에 큰아버지댁도 생활이 많이 가난했습니다. 저까지 합해서 모두 여섯식구가 같이 살아야 하는데 큰아버지의 간당간당한 월급에 매달려서 살았습니다. 아이들은 모두가 새옷 사입기 너무 힘들었고 식사에 고기반찬은 한번도 본적이 없었고 여섯식구가 비좁은 단칸방에서 오구구 모여 살았습니다.

하지만 식구들끼리 얼굴 붉힌적이 한번도 없고 옷이 해져서 볼품없으면 할머니가 손수 수선하거나 지어입히면 지어입혔지 누구집에서 낡은옷 받아서 아이들에게 입히거나 하는 일이 절대 없었습니다. 저는 그때가 무지막지하게 그립습니다. 행복했으니까요.

과연 가난이 아픈 상처를 만드는 합리하고 정당한 이유가 될수 있을가요 ?

사실 저는 저의 아빠엄마의 경우에 돈에 대한 인지에서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여기저기에 돈이 모두 필요합니다. 당연 돈은 막 쓰면 당연 안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필요한데까지 돈을 안쓰려고 애쓰면 문제가 생깁니다.

제가 어릴적 저의 아빠엄마 경제상황은 큰아버지댁보다는 많이 나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옷이 볼품없이 된 상황에서도 저의 옷사는데 돈쓰기 싫어하는 아빠엄마. 뭐 이유야 있겠죠. 생활이 바빠서 무조건 돈 아껴야 한다… 뭐 이런거 저런거.

하지만, 정도이상의 절약은 그 대가가 무엇일가요 ?

첫번째는 저의 자아가 희생의 대가였습니다. 자존감도, 자신심도 전부 다 잃어버렸습니다. 마음은 상처들로 볼품없이 되어버렸고요.

두번째로 저의 아빠엄마의 경우에는 돈 좀 절약하는 대가로 그들을 깊이 사랑하고 있었던 딸 — 저를 잃었습니다.

눈앞에는 돈을 절약하는듯이 보이겠지만 알고보면 그것이 시간이 좀 지나면 엄청 큰 것을 잃는것을 대가로 해야 할수도 있습니다.

저의 문장을 보시는 분들께 정도이상의 절약은 신중히 생각해보라는 말씀을 드리면서 <정도이상의 절약과 그 대가> 여기서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

***

혹시 다른 내용이 필요하신 부분이 있으시면 제가 문장시작에 남겨놓은 저의 트위터에 메세지를 남기거나 티스토리블로그에 댓글을 남겨주시면 저의 능력이 닿는데까지 최선을 다해서 문장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힘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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