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지맘
@Sarah_Kim73889
트위터검색창에 “견지맘”으로 검색하면 뜹니다. 아이디 확인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견지맘입니다.
이번 문장에서는 저의 어릴적 가정모드로부터 생각히는 많은것들에 대해서 공유해드리고 싶습니다.
어릴적 저는 다섯살까지 할머니댁에서 할머니, 큰아버지, 큰어머니, 사촌오빠, 사촌언니 그리고 저 이렇게 여섯식구의 대가정에서 가장 어린 아이로 화목한 가정에서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문제는 제가 저의 집으로 돌아오면서부터였습니다.
저의 집에 돌아와서는 아빠, 엄마, 언니 그리고 저 이렇게 넷이서 살았는데 제가 다섯살까지 할머니댁에서 살았던 분위기랑 너무 다른 판이었습니다.
할머니댁에서는 제가 묻는 모든 물음이 모두 해답이 있었고 그 누구도 제가 묻는 물음에 대해서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집에 돌아와서는 저는 가족에게 물음을 묻는것도 잘못이고 욕먹어야 하는 일이라는것을 다섯살에 처음 알았습니다.
힐머니댁에서는 모두가 저에게 웃는 모습이었고 제가 어릴적에 부리는 재롱을 칭찬도 해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집에 와서는 재롱부리는것이 바보같다는 얘기를 다섯살에 처음 들었습니다.
할머니댁에서는 저는 거짓말을 한번도 해본적이 없었습니다. 거짓말을 해야 할 필요가 없었기때문입니다.
저의 집에 돌아와서 가족사이에서도 눈치를 보면서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걸 다섯살의 어린 나이에 처음 알았습니다.
할머니댁에서는 생활형편이 아주 힘들었지만 식구들중 그 누구도 자신이 힘들다 푸념이 없었고 자신이 힘든걸 식구들중 가장 어린 저에게 위로해달라고 요구하거나 화풀이하는 일은 아예 없었습니다.
저의 집에 돌아와서는 경제형편이 많이 나음에도 불구하고 식구들중 가장 어린 제가 모든 사람들의 화풀이대상이었습니다. 어릴때에는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할머니댁에 있을때는 겪어보지 못했기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사춘기에 들어서면서부터 반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돌아오는건 더구나 세찬 비난과 모욕뿐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항상 자신한테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그래도 가족이니까 많이 이해해주어야지.”
하지만 긴긴 시간동안 저의 “가족”이라는 사람들한테서 티끌만큼한 이해와 존중도 받지 못한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이해를 주기만 하는것이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꼭마치 제가 모래시계의 윗층에서 모든 아픔과 상처를 눈물로 메우면서 이해를 다른 세식구한테 주어왔던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의 집에 사는 다른 세 식구는 마치 저라는 사냥감을 수시로 삼켜버릴듯이 커다란 입을 쩍 벌이고 으르렁대는 야수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모래시계 아래층에서 제가 주는 이해와 포용을 날름날름 받아먹고 그들끼리는 나름 화목하게 잘 지내고 있는것 같았습니다.
많이 울었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의 머리속에 박혀있는 가족의 모습은 이런게 아닌데.
왜 나의 가족은 이럴가 ?
삼십년 넘게 풀리지 않던 의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울증을 겪게 되면서 저자신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서 자세히 정리하면서 답을 얻었습니다.
제가 할머니댁에서 살던 시절에 여섯식구사이의 관계는 진실한 가족관계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저의 집으로 돌아왔을 시점에서 저랑 다른 세식구 사이의 관계는 가족이 아닌 지배와 복종의 관계였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가 할머니댁에서 살면서 저의 머릿속에 박혀진 이 세상의 모습이 그들의 머릿속에 박혀진 이 세상의 모습이랑 너무 다르기때문입니다. 그들 셋의 머릿속 세상은 너무 닮았는데 저만 다른것이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와 다른 사람에 대해서 불편감을 느끼게 됩니다. 때문에 단체생활을 하다가 누군가가 대부분 사람들과 다른 모습을 보이면 그 대부분 사람들은 그 누군가를 자신들과 같은 모습으로 만들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러다 보면 그 누군가는 모래시계의 윗층에 밀려가게 되고 대부분 사람들은 모래시계 아래층에서 윗층에 있는 사람이 자신들과 다른 면을 모두 빼앗길때까지 끊임없이 윗층 사람을 부정합니다. 그러다가 모래시계 윗층 사람이 자신만의 모습을 모두 잃어버리면 자신의 의지는 완전히잃어버린채 단순히 모래시계 아래층 사람한테 복종만 하는 기계가 되어버립니다.
그러다가 또 다음번에 또 다른 모습의 누군가가 이 단체에 들어오면 원래 모래시계 윗층에 있던 그 사람도 이번에는 모래시계 아래층 사람들과 합류하여 모래시계 윗층 사람을 부정합니다.
순환은 이렇게 이어지면서 지배와 복종의 관계는 계속되어갑니다.
어떠세요 ?
혹시 익숙하지 않으신가요 ?
직장 곳곳에서도 쉽게 볼수 있는 모습인것 같습니다.
혹시 지금 저의 문장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도 모래시계 윗층에 계시다가 모래시계 아래층에 내려와서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를 부정하고 계신건 아닌가요 ?
사람들은 흔히 모래시계 아래층을 차지하면 자신이 이겼다고,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근데 과연 그럴가요 ?
모래시계 아래층을 차지했는데 윗층에 들어오는 다음 사람이 없다면요 ?
지배와 복종의 모래시계가 잘 가동하려면 윗층에 꼭 누군가가 있어야 합니다. 윗층에 사람이 없는 순간, 즉 복종하는 사람이 없어지는 순간, 지배와 복종의 관계는 붕괴됩니다. 지배와 복종을 기초로 이루어진 시스템도 같이 붕괴를 맞이힙니다.
이런 붕괴를 막기위해서 모래시계 아래층에서는 만약 윗층에 새로 들어오려는 사람이 없을 경우 아래층에서 누군가를 윗층으로 밀어내겠죠.
그렇다면 그 밀려나는 사람은 누가 될가요 ? 과연 모래시계 아래층이 안전할가요 ?
사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모래시계 윗층이나 아래층이나 모래시계가 가동하는 한 모두가 위기속에서 살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모두가 안전할수 있는 방법은 없을가요 ?
있습니다.
저의 답안은 모래시계 가운데 있는 모래구멍을 어떤 도구로 막아서 모래시계의 가동을 멈추는것입니다.
그러면 다음 물음이 나오게 됩니다. 그 도구가 뭐냐 ?
저의 답안은 거절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흔히 복종의 반대어는 지배라고 생각합니다. 복종만 하는것은 너무나 힘들고 비참하다고 느낍니다. 때문에 많은 상황에서 서로가 모래시계의 아래층을 차지하기 위헤서 피터지게 싸웁니다.
이런 싸움의 소용돌이속에 파묻혀 살다보면 자연히 복종과 지배외에 거절도 삶의 방식과 태도가 될수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합니다.
거절이 있어야 대화가 있을수 있고 대화가 있어야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지배와 복종이 아닌 평등한 관계로 발전할수 있고 이런 기초상에서 단체가 부단히 강대해질수 있습니다.
만약에 거절로 잘 먹히지 않는 상황을 만나면 저는 단호하게 미련없이 그 단체를 떠나는게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 하면 지배와 복종의 관계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소모하는 결과밖에 이루어지지 않기때문입니다.
부디 여러분의 생활속에서는 저의 문장에서와 같은 모래시계의 모습이 적어지기를 바랍니다.
이상 <모래시계> 여기서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
***
혹시 다른 내용이 필요하신 부분이 있으시면 제가 문장시작에 남겨놓은 저의 트위터에 메세지를 남기거나 티스토리블로그에 댓글을 남겨주시면 저의 능력이 닿는데까지 최선을 다해서 문장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힘내세요. ^^
'미술작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독한 외로움 (0) | 2024.09.08 |
---|---|
모래시계2편: 나무물통의 법칙과 직장 (0) | 2024.07.19 |
주님께 드리는 말씀 (0) | 2024.06.03 |
입꼬리저울 (0) | 2024.06.02 |
숨겨진 눈물 (2) | 2024.06.01 |